런던에 돌아온 이후로 본 첫 공연이 Sarah Kane(사라케인)의 4.48 Psychosis였다.
집에서 가까운 Lyric Hammersmith에서 볼만한 공연을 탐색하다 로열오페라에서 사라케인의 작품을 올린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다.
보수적인 로열오페라에서 난해하고 거친 사라케인의 작품을 올린다니 어딘가모르게 파격적이고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것 같다. 게다가 2016년 uk theatre awards에서 상도 받아 작품성도 보장된 듯했다.
사라케인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우울증때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국대표작가인 그녀가 남긴 6개의 희곡작품은 주로 성적욕구, 폭력성, 치명적인 사랑, 죽음 등을 주제로 다룬다.
10여년 전, 사라케인의 희곡을 읽었을때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것은 이전에 내가 알고 읽었던 희곡들과는 다른 형식이었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는것이었다.
로열오페라의 공연을 볼 때 한국에 두고 온 사라케인의 희곡집이 생각났고, 이번에 와서 다시 4.48 Psychosis를 읽어 보았다.
4.48 Psychosis는 그녀가 심한 우울증을 앓며 남긴 마지막 작품이고, 우울증을 겪는 극중 화자에게 정신이 또렷했던 시간이었던 새벽 4시 48분을 뜻한다.
희곡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고, 그안에서 절망과 원망 그리고 마지막 절규 같은게 휘몰아치는게 느껴졌다.
단어의 나열이 많았고 등장인물이 명시되지도 않고,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쓴 느낌이었다.
그녀는 사무엘 바케트의 영향을 받았고, 원래 시인이 되려고했어서인지 작품에서 시적인 느낌도 든다.
사라케인 희곡집
로열오페라가 옮긴 4.48 Psychosis는 의사와 우울증 환자의 대화가 큰 줄기를 이루었고, 그들의 대화는 스크린에 자막과 악기가 내는 소리 그리고 때때로 노래로 표현되었다.
그리스극의 코러스처럼 여러명의 등장인물이 읊조리는 듯한 노래는 분열된 자아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오페라이지만 많은 노래에 가사가 없는것 또한 특색있었고 독일 오스티 마이어의 연극처럼 아주 모던한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돌아서는 나의 마음도 가라앉게 하는 무거운 내용인지라 우울증 환자역을 맡은 주인공에게는 좀 힘든 작품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어도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 사라케인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재능과 에너지가 아까워 그녀의 죽음이 더 안타까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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