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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게 되면서 극장에 가는 건 특별한 연중 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아이가 기관에 가 있을 때 적당한 시간을 찾아 영화를 보는 건 뭔가 촉박한 미션같이 느껴져서,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실 때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극장을 찾았다.

작년에 영국에 오기 전에 친정에서 잠시 살게되어 이전보다 자주 영화관에 갈 수 있게 되었고, <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그 때 본 영화 중 하나였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내가 최근 보았던 영화 중에 가장 인상적인 영화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영국을 선진국으로 여겨 모든 것이 한국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뭔가 로망을 이루게 해 줄것 같은 그곳에 가는 나를 부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영국 사회의 모습을 과장없이 그대로 재현한 논픽션과 같은 이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를 보면 그런 생각은 금새 사라질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현재 영국의 의료, 교육, 모든 공공 기관의 사회 시스템은 다 무너진지 오래이다.

영국에서 의료 서비스가 모두 무료이고 사회 보장이 잘 되어 있을 것 같지만, 별 효과 없는 진료 한번 받으려면 한달은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속에서 자연히 치유가 되거나 병세가 악화될수도 있다.

감기라고 진단하고 돌려보낸 환자가 몇일 후 사망했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이곳에서 아프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지속적인 공공 기금 삭감으로 학교에서는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선생님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기위해 해외로 떠난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낮은 임금에 반비례하는 과다한 업무량으로 인해 선생님들이 해외의 국제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그 숫자가 매년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움직임과 비슷하게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숫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였다.

  

현재 영국 경찰은 재정적인 지원을 안해주는 영국정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얼마 전 영국의 번화가 옥스포드 스트릿, 즉 우리 나라로 치면 명동같은 거리에서 어린 한국 유학생이 집단 구타를 당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한시간을 기다려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고한다. 

이미 경찰 인력 부족이 큰 문제로 대두된 이 나라에서 억울하고 충격적이지만 경찰이 모습을 안보인건 놀랍지도 않다.

피해자에 따르면 한국인을 보호해 주어야할 주영한국대사관의 적절한 대처도 초기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의 첫 장면에서, 몸이 안좋은 다니엘 블레이크가 실업급여 관련해서 공공기관에 전화를 했을 때에 계속 통화가 안되는 것도 얼마나 사실적인지 공감이 된다. 

영화에서 관료주의와 융통성 없는 행정 절차는 도움이 시급히 필요한 일반 시민들을 지치게 만들고 더욱 힘들게 한다.  

개인을 보호해주는 나라는 정말 유토피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다.      

 

영국 노동당 총수가 테레사 메이에게 추천한 영화, 영국에서 정치적 논쟁꺼리가 된 이 영화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니엘블레이크를 많은 사람들이 만나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