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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를 집어 든 것은 사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소설보다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가 더 친근했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책을 다 읽지 않고 도서관에 반납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내 안에 없었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영국 온라인 서점을 구경하다가 쇼코의 미소가 최근 영국에서 출간되었음을 알았다.
안그래도 최은영 작가의 신작 <밝은 밤>도 요즘 호평을 얻고 있는 터였다. 어떤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인지 궁금해져 <쇼코의 미소>를 펼쳤다.


<쇼코의 미소>에서 영화인이 되고 싶은 소유의 현실은 여러 공모전에서 좌절한 경험이 있던 최은영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했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을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이 문장들이 여러개의 꿈을 품고 있는 나를 조금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은영 작가의 글은 따뜻함과 다정함을 느끼게 했다. 쇼코의 미소를 포함한 7개의 소설에서 담담하게 스며있는 사랑을 발견하고 나는 여러 번 울컥했다. 인상적인 장면이 여러 개 있지만 내게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씬짜오, 씬짜오에서 투이 가족과 사이가 멀어지고 주인공이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전개되는 부분이 그러했다.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주인공의 엄마가 투이 가족을 위해 만든 따뜻한 모자, 투이가 주인공에게 건넨 흑백 스누피 만화책에 주인공을 연상케하는 우드스탁만 노란색을 입힌 그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었을 때 그랬다.
<쇼코의 미소>의 책 마지막장에 실린 작가의 말 역시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멋 부리지 않고 진심이 느껴져서 독자의 마음에 더 깊이 각인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봤다. 한국적인 정서가 강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영국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작가의 신작 <밝은 밤>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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